작성일 : 11-05-24 09:57
[2011년 5월 24일 조선일보] [수도권] [서울人] 서울서 3代째 한의원 하는 춘원당 윤영석 원장
 글쓴이 : 춘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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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되라고 할아버지가 '경혈 문신' 남겼죠"

둘째아들 명문대 합격했지만 한의대 보내려 재수시켜

2008년 '한방박물관' 건립 "자랑스러운 한의학을 외국 환자들에 소개할 것"

서울 종로구 돈의동 골목에 들어서자 건물 통유리를 통해 대형 기계가 보였다. 이곳은 한방병원 춘원당(春園堂)이 환자들의 한약을 달이는 탕전실로 직원들은 반도체 공장처럼 흰색 위생복과 모자를 쓰고 약을 체크한다. 춘원당의 윤영석(53) 원장은 "일반 한의원은 탕전실을 잘 공개하지 않는다"며 "환자들에게 탕전실을 공개하면 약에 대해 믿음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춘원당은 환자들이 중국산 약재에 대해 불안해한다는 것을 감안해 중금속 잔류 실험실도 갖췄다. 윤 원장은 "최대 300명의 약을 달일 수 있는 탕전실은 디지털화된 시스템으로 특허까지 받았다"며 "이제는 한방병원도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도태된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한방병원의 현대화에 관심이 많지만 그의 집안은 서울에서만 3대째 한의원을 운영해왔다. 서울에서만 3대째이고, 평북 박천(博川)에서 처음 '춘원당'을 연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7대째 내려오고 있다. 어려서부터 집에는 약재를 팔러온 약재상으로 북적거리고 약재를 찌고 말리는 냄새로 가득했다. 윤 원장은 "할아버지 곁에서 중학교 때부터 약재를 외우고 고등학교 때는 초보적인 처방은 할 수 있을 만큼 됐다"며 자신의 손목을 보여줬다. 손목에는 펜으로 찍은 것 같은 검은 점이 보였다. 조부가 열두 살인 윤 원장에게 한의사가 될 것을 다짐받으면서 남긴 '문신'이었다. 경혈 자리에 먹물을 찍은 뒤 대침을 놓아 평생 기억하게 만들었다.

한방병원인 춘원당의 윤영석 원장이 탕전실에서 한약 달이는 기계를 살펴보고 있다. 서울에서만 한의원을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윤 원장은 한방의 현대화와 함께 한방박물관 건립 등 지역 가꾸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준헌 기자 heon@chosun.com

윤 원장은 두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주기 위해 '30세까지 한의대에 입학하기 위해 시험친다'는 조건을 달았다. 둘째아들이 명문대에 합격했지만 등록시키지 않고 한의대 입학을 위해 재수를 시킬 정도였다. 그만큼 춘원당의 한의학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윤 원장은 "두 아들이 말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한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며 "한의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신뢰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성심성의껏 진료를 하고 약을 쓰면 환자들이 가장 잘 안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경희대 한의학과를 나와 1984년부터 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한의원을 3대째 이어오면서 환자들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조부 때는 소아마비와 부인병을 전문 과목으로 내걸 정도로 당시에는 소아마비가 심각한 질환이었다. 그는 "80년대에는 잘 못 먹어서 생긴 병이나 내분비 질환이 많았는데 지금은 비만 같은 질환이 많다"고 했다.

윤 원장은 2008년 약장과 진맥대·침통·약합·약소반 등 1800여점의 유물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을 세웠다. 유학자들이 들고 다니던 선추침통을 비롯해 왕진용 미니 약장 등 한방 관련 유물을 10년에 걸쳐 모았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 가정에서 흔하게 사용하던 곱돌 약탕관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자랑스러운 한의학에 대한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일본 환자들이 한방박물관을 둘러보면서 한의학에 대해 많이 이해하게 된다"고 소개했다. 박물관 개관과 함께 낸 도록은 영어와 일어를 함께 실어 해외에 한의학을 소개하는 매체가 되고 있다. 병원 신관을 지을 때도 한옥 건축을 경험해본 건축가 황두진씨에게 맡길 정도로 전통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윤 원장은 조부가 기거하며 진맥을 하던 한옥을 춘원당 자리로 옮겨와 한방 명소로 꾸미는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대식 건물을 지으면서 경기도에 옮겨놓은 한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주변은 모텔이나 술집 등이 들어서 있지만 지역을 떠나지 않고 꾸준한 투자를 통해 한방 명소로 가꿔나가겠다는 생각이다.

손정미 기자 jms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