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1-03 11:43
[2010년 12월 28일 한국한의학연구원]170여년 代 이은 '춘원당 한방박물관'
 글쓴이 : 춘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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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서 2008년 개관, 고려시대 청동 용머리 초두 등 한의학 유물 천여점 전시
교육프로그램 운영, 일 년에 두 차례 특별전·기획전 통해 타 문화 접목 시도

1847년, 무관에서 퇴직한 윤상신 선생이 그간 배운 한의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고향 평안북도 박천에 한의원을 열었다. 한의원은 금세 고장에서 명성을 얻었고, '춘원당'이란 이름으로 2대와 3대 등 대를 이어 가업은 계속됐다. 춘원당이 고장을 넘어 더 넓은 무대에 알려진 것은 5대 윤종흠 선생에 이르러서이다. 4대 한의사의 요절(夭折)로 가업은 위기를 맞을 뻔 했으나 5대 한의사는 당대 최고 명의를 찾아가 사사 받으며 가업을 발전시켰다. 6·25때 한의서와 경혈도, 웅담을 품에 안고 월남한 윤종흠 선생은 서울 종로에 다시 춘원당의 이름을 내걸고 환자를 보기 시작했고, 곧 춘원당 앞 골목에는 소아마비와 부인병 환자들이 번호표를 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줄이 끊이지 않았다. 1984년엔 일본 인기 여가수가 갑상선기능이상으로 춘원당에 찾아와 진료를 받고 완쾌되는 사건이 일어나며 춘원당은 더욱 명성을 높였다.

현재 7대 윤영석 한의사에 이른 춘원당은 갑상선 질환, 불임, 알러지성 질환 등으로 인정  받는 한방병원으로 발전했다. ‘있는 그대로의 처방이 아니라 환자에 맞춰 적절하게 입방하라’는 대대로 이어진 비방(秘方) 아닌 비방과 어릴 때부터 받아온 도제식 교육, 한의학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의무감이 170여년 동안 이어진 결과였다.

춘원당 한방병원이 높은 평판 속에 발전하자 소위 '잘 나가는' 병원이 대부분 그러하듯 강남으로 이전해야 된다거나, 분원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지만, 윤영석 원장은 모텔과 쪽방촌이 들어찬 종로 골목, 그 자리에 병원을 개축했고 바로 마주하는 자리에 신관 건물을 지어 '춘원당 한방박물관'을 냈다. 전자는 ‘동네를 떠나지 말고 꾸준히 인술을 펼치겠다’는 선대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고, 후자는 사회 환원과 기여에 대한 의지를 조용히 실천한 것이었다.

전쟁통에 금덩이를 대신 내주고 지켜낸 한의서와 침구, 경혈도 등 7대를 내려온 손때 오른 한의학 관련 집안물품들과 한의학에 대한 애착으로 모아진 한의학 유물들로 가득한 춘원당 한방박물관은 2008년, 그렇게 해서 종로 골목에 문을 열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돋보여…유물과 함께 현대식 탕제실 공개
이윤선 관장, 학예사와 함께 교육 프로그램 개발…연 2회 기획·특별전 개최 등

                      

춘원당 한방박물관의 건물은 유명 건축디자이너 황두진 씨의 작품이다. 황 씨는 춘원당의 역사를 충분히 이해한 후, 자연의학을 추구하는 한의학의 특성에 맞게 돌과 나무의 재질을 그대로 살려 자재를 사용해 전통과 현대가 오묘하게 조화된 작품을 완성했다. 또 세련됐지만 튀지 않는 외관 덕에 좁은 골목, 낡은 집들 사이에서도 박물관 건물은 크게 어색하지 않게 보인다.

박물관은 꼭대기 5층에서부터 지하 1층까지 아래로 내려오도록 동선을 짜서 보면 좋다. 먼저 5층 상설전시실에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한의학에 관련된 다양한 유물 150여점이 전시돼 있다. 침통 표면에 오얏나무를 조각하고 칠보를 입힌 칠보침통, 약재를 찧거나 빻는 데 사용하는 도구인 약연, 한약 달이는 물을 정수하기 위해 사용되던 청자정병, 약재를 넣어 끓이는 약탕기 일종인 초두, 약사발, 궁중 약상, 휴대용 한약장, 경혈도 등이 전시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5층 전시실을 학예사의 설명과 함께 둘러보면 한의학의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4층과 3층에서는 역사 깊은 한의학이 근래에는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 4층에는 한약재 품질검사실과 잔류농약·중금속 검사실, 약재 보관실, 교육장 등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3층에는 약재실, 엑기스 조제실, 탕제실 등이 있다. 또 4층과 3층의 한 쪽 벽면은 천장을 공유하는 뚫린 형태로 돼 있어 4층에서 투명한 창을 통해 3층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다. 소규모로 운영되는 교육프로그램도 3층과 맞닿은 4층 교육장에서 진행된다. 

탕제실에선 춘원당이 자체 개발한 약탕기가 끊임없이 가동되고 있는데, 시간과 온도가 자동으로 제어되는 디지털 방식도 신선하지만, 마치 실험복과 같은 하얀색 가운과 모자, 마스크로 중무장한 약제사들이 깨끗하게 약을 달여 내는 모습이 신뢰감을 준다. 3층은 따로 공개하지 않지만 투명한 문을 통해, 모니터로 처방전을 확인하고 정확하게 약재를 혼합하거나 CCTV 앞에서 완성된 한약을 포장하는 약제사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각각 치료실과 로비가 위치한 2층과 1층을 지나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춘원당 연대표와 선대 한의사들의 유품과 로고 등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춘원당역사관과 복합문화공간이 조성돼 있다. 역사관에는 5대 한의사가 한국전쟁 통에 월남을 하며 보따리에 싸 가지고 온 한의서와 침구, 경혈도, 진단서 등과 한의서에는 없는 가내 비방 기록, 외상장부도 있다. 복합문화공간에서는 특별 전시회는 물론 각종 공연과 음악회를 연다. 


    

5층에서부터 지하 1층까지 내려오면 한의학의 소중함과 전통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일 년에 두 차례 진행되는 기획전과 특별전이 훌륭하다. 최근 진행된 기획전 '의예동률(醫藝同律)-우리 의학과 공예의 조우'는 전통공예가 해석한 한방의 미를 보여준다. 은·옥·한지·백자·한복·손누비·나전칠기·옹기·매듭 분야의 전통공예가들이 재현한 한방 관련 용품들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한방에 관련된 조상들의 섬세한 배려와 지혜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청아한 백자로 만들어진 한약 사발은 바닥이 둥글다. 약이 쓰더라도 쉬지 말고 한 번에 꿀꺽 삼켜야 하기 때문이다. 노리개에 향을 달아 장식품과 구급약을 동시에 추구한 것도 볼 수 있고, 기를 보충해주는 것으로 알려진 옥을 화려하게 조각해 몸에 지닌 것에선 나름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춘원당 한방박물관의 유물들은 대부분 한의학에 대한 애착으로 하나하나 모아놓은 윤영석 원장의 수집의 결과지만, 박물관 전체를 구성하고 운영해나가는 것은 이윤선 관장의 몫이다. 윤 원장의 부인이기도 한 이 관장은 결혼 초기 ‘춘원당 밥을 먹으려면 반드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에 아무 말 없이 약재 손질, 약첩 싸기, 처방전 읽기 등을 배웠던 것처럼, ‘한의학 유물들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는 윤 원장의 희망사항을 들은 후 조용히 박물관경영학을 공부하고 구체적인 준비와 진행을 도맡았다.

이 관장은 “임종 전날까지 환자를 보셨던 시조부님이나 환자가 보고 싶어 3일 이상 휴가를 못 가는 남편의 열정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한의학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기획하는 과정에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갑자기 많이 몰려와 학예사들이 바쁠 때는 직접 해설에 나서는 이 관장은 “전체적인 박물관과 한의학의 발전과정 등을 설명하며 뭉클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아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많이 고민한다. 한의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오해 없이 알려주고, 되도록이면 역사 교육이나 진학에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현재 운영 중인 정규 교육프로그램 ‘춘원이의 허준 따라잡기’는 초등학교 4~6학년생들을 대상으로 한의사 체험을 하면서, 국어·사회·과학 교과과정과 연계되도록 구성했다.

“아직까지는 시간의 제약이 있어서 원하는 만큼 내실 있게 운영되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한의에 대한 것을 배우면서 실제 학교 교육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 지금은 초등학생들 위주로 진행되지만, 진로 선택을 앞둔 고등학생들이 한의학을 보다 직업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 중입니다.”

현재 박물관의 관람객들은 대부분 춘원당 한방병원의 환자들이다. 최근엔 종로와 인사동을 찾은 외국관광객들도 늘고 있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찾아오기도 하지만, 여전히 진료 대기 시간에 와서 전시실을 둘러보고 약이 지어지는 과정 등을 보고 가는 환자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대다수는 춘원당의 의술과 역사를 알고 주변에 물어물어 오는 사람들이어서 이 관장은 매우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선대의 뜻이 ‘적극적인 홍보보다는 입소문을 믿어라’이기 때문에 춘원당 한방박물관 역시 적극적인 홍보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찾아오시는 분들이 작은 즐거움과 감동을 느끼실 수 있도록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유물은 더 많고 좋은 곳도 있으니, 다른 방면에서 접근을 시도합니다.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도 그렇고, 이번 의예동률 기획전처럼 한방과 예술의 만남 등 전통의학이 현대와 새롭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늘 저희의 화두입니다.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글 = 한국한의학연구원(KIOM) 홍보협력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