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9-07 11:05
[2017년 9월 3일 중앙SUNDAY S매거진 547호] 2017 문화소통포럼에참석한 유럽의 사진작가들
 글쓴이 : 춘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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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사진작가 티노 소리아노
“한국의 역동성에 감탄, 한글은 하나의 예술품”


스페인 사진작가 티노 소리아노(Tino Soriano·62)는 올림푸스 미러리스 카메라(OM-D E-M1 Mark II)를 가볍게 어깨에 메고 세계를 누빈다. 지구촌 곳곳에서 만나는 역사적인 사건들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일상, 경이로운 자연 모두 그의 피사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익스페디션의 사진가-전문가 그룹 멤버인 그는 삶의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사진으로 1995년 스페인 사진가상을, 2015년에는 유네스코 휴머니티 포토 어워드에서 대상을 받았다.
 
여행 사진의 대가인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전 세계 의료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에 도착해 찍은 사진 역시 춘원당 한방 박물관에서 약을 달이고 있는 한약사의 모습과 한밤중 고궁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한복 차림의 여성이다. “춘원당에는 짧은 시간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정성스레 약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은 첨단 기술이 발달한 나라라고 들었는데, 막상 와 보니 전통이 생활 속에 살아있더군요. 한복을 입고 휴대전화를 검색하는 모습도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보여주는 재밌는 장면인 것 같아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렸죠.”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사범 대학을 다니던 중 “문자보다 영상이 무언가를 가르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생각에 사진을 시작했다고 한다. 독학으로 5~6년 사진을 탐구했고, 1992년 바르셀로나 한 병원의 소아암 환자들을 촬영한 사진 시리즈 ‘미래는 있다(There is a Future)’가 책으로 출간되며 포토저널리스트로서 이름을 알리게 됐다. 사진 속 아이들은 고통의 한가운데에서도 밝게 웃고, 도넛을 안경처럼 눈에 올려 장난을 친다. “당시까지 환자, 특히 어린 환자들을 사진에 담는 것이 금기시돼 있었어요. 제 사진으로 스페인에서는 어린이 암 환자에 대한 관심이 촉발됐고, 모금액도 늘었습니다. 사진이 사회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한 작업이었어요.”
 
이후 그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각국의 의료 현장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특히 서구적인 병원이 아닌 그 지역만의 전통 의료법, 대체 의학이 관심 분야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85%가 아플 때 병원에 가지 못하고 민간 요법으로 치료를 받습니다. 인간이 고통이라는 과제에 어떻게 맞서는가, 그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중국 한의원의 부황 치료, 몸에 돌을 올리는 인도의 아유르베다 치료법, 뱀을 몸에 감아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이스라엘의 민간 요법 등 그의 사진들은 언뜻 보기에 기괴하기도 하다.
 
그는 유명 관광지보다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오지를 자주 찾는다. 그곳에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다채로운 인간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항공사 아이베리아의 지원으로 스페인 북서부의 자연을 촬영했고, 페루·멕시코·버마 등을 방문해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포착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2001년 방문한 도미니카 공화국의 아이티 난민들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의 사탕수수밭에서 노예처럼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사진을 찍는 내가 이들을 위해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사람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극적인 인간사를 자주 접하지만, 그가 자신의 사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유머’다. “아무리 슬픈 순간에도 사람들은 웃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삶의 어두움과 밝음이 공존하는 순간, 그 균형을 포착하고 싶어요.” 그가 찍은 사진 중엔 그래서 삶의 아이러니컬한 순간들을 절묘하게 포착한 것들이 많다. 얼룩말 옆에 얼룩 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서 있거나, 모나리자 그림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 걸어가는 사진 등은 보는 순간 웃음이 터진다. “이런 사진을 찍기 위한 가장 중요한 태도는 ‘인내’에요. 어떤 장소에서 재밌는 장면이 떠오르면, 주변을 떠돌면서 머릿속 그 장면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을 기다리죠.” 99년 세계보도사진재단으로부터 대상을 받은 이 ‘바르셀로나의 모나리자’(Mona Lisa in Barcelrona)는 바르셀로나에 새로 개관하는 모조 미술품 박물관 거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찍을 수 있었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그는 “유럽의 도시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동감과 에너지가 느껴졌다”고 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경제 위기와 민주주의의 후퇴 등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잖아요. 지난 해 한국 촛불 시위 모습을 뉴스로 보면서 한국이 전 세계 민주주의의 모델, 평화의 모델이 될 수 있는 나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 작가로서 꼭 한국에 와 보고 싶었어요.”
 
이틀 간의 짧은 일정 동안 조계사와 경복궁, 한식 레스토랑 등에서 만난 예의 바르고 연장자를 공경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특히 한글이라는 문자를 알게 돼 기뻤습니다. 한글은 한국인의 정서를 잘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술품이더군요.”
 
그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곳을 다니느라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다음에는 한국의 더 다양한 모습을 사진으로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